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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과 중종의 이야기

by 부품쟁이 2023. 10. 11.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 9월 2일(음력)에 일어난 사건으로, 조선의 제10대 왕인 연산군을 몰아내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배경

연산군은 무지막지한 폭정으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문신들을 제거하였으며, 경연(왕의 공부)과 대제학 제도를 폐지하고, 신언패(신하 언행금지) 실시, 성균관의 연락(궁중음악) 장소화, 자신의 유흥을 위해 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 언문 도서의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반발한 훈구 세력과 조정의 궁중 세력이 결탁해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성종의 차남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었습니다.

중종반정

중종반정을 주도한 인물은 전 이조판서 성희안, 지중추부사 박원종 등 훈구 세력과 연산군이 총애를 받던 궁중 세력인 임사홍, 신수근 등 이들은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계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해 9월 연산군이 어느 지역 방문할 계획을 알고 거사일을 계획하였으나, 연산군의 행차가 취소되어 거사에 차질이 생겼었다. 그러나, 호남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유빈과 이과 등의 거사를 위한 제청한 내용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기존 계획대로 쿠데타를 그대로 추진하게 되었다.

중종반정은 조선 왕조 500년 기간 동안 신하들이 왕을 탄핵하여 성공한 유일한 사례이다.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유배되어 위리안치(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 되었다가 역질을 앓다가 악화되어 두 달 후에 사망하게 되었다.

중종의 개혁

중종은 연산군 때 여러 폐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홍문관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다.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젊은 유생들을 과감히 증용하는 왕도정치를 꿈꾸며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515년 신진 사림파 세력인 조광조를 등용하고, 그가 주장하는 도학(주자학)을 중심으로 군주정치 표방해 기존의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중종이 이렇게 움직인 것은 반정 세력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집권 초기에는 반정 세력의 밀려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반정 공신들의 반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해 약화된 국가 재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으나, 이 역시 반정공신들의 반발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다. 이에 중종은 사림파를 정계에 다시 사림파 세력을 끌어드리게 된다.

신진 사림과의 갈등

조광조를 위시한 신규 사림세력은 성리학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오랬동안 지속해 온 기존의 사학(한문학)을 배척하는 등 사학파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이에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을 제시하며, 도학(주자학)을 위시한 제도를 도입하고, 풍습, 관습 등 실 생활과 동떨어진 정책을 제시하여, 일반 백성, 훈구 세력과도 대립하게 됩니다.

또한, 중종도 신규 사림세력과 왕도정치를 내세우며, 훈구 공신세력을 견제와 동시에 강력한 왕권강화를 꿈꿔왔지만, 성리학 사상의 정치를 요구하는 사림 세력에 염증을 느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조광조는 급진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반정 세력 즉, 정국공신의 위훈삭제 문제로 인해 기묘사화를 당하는 계기가 됩니다.

외척세력 등장

급진적인 사림 세력의 몰락이후, 다시 공신 세력들이 세를 규합하는 일이 벌어지자 중종은 윤여필, 김안로 등 외척 세력을 중용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들에게 내섬서와 장악원 등의 제조직을 제수했다가 훈련대장 등을 도성의 지키는 중요한 직책을 제수하며, 이후 이들의 자녀들까지 중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외척 세력은 또 다른 세력을 규합하며, 을사사화의 전주를 맞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외척 세력이 새로이 등장하여 중종의 치세 중기와 후기에는 외척 세력과 반정 공신들 간의 정권 다툼으로 인해 크고 작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 혼란 정국이 지속되었다.

결론

중종은 1544년 11월 15일(음력)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인종과 명종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중종의 재위 기간은 총 39년으로, 조선 왕조에서 세 번째로 긴 재위 기간을 기록하였다.

중종반정은 조선 역사상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연산군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중종의 재위 기간 동안에는 다양한 정치적 사건과 개혁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종반정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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